RinZ라는 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민효린
소년들은 꿈을 꾼다. 모든 소년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소년들(그리고 어떤 소녀들)은 조그맣고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꿈을 꾼다.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소녀는 그래서 현실과는 무관한 존재처럼, 이를테면 커다란 눈망울, 투명한 피부, 가늘고 긴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다. 마치 어떤 그림에서 얼핏 본 것 같은 실루엣의 소녀는 그래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건물 옥상에 홀로 앉아 지구와 교신을 시도하거나 바람둥이(이를테면 이준기)같은 소년의 작업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소녀는 교복을 입고 여느 아이들처럼 교문을 빠져나가기도 하고 낡은 의자에 앉아 맑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기도 한다. 혹은, 정말로 누군가의 그림에서 빠져나와 따뜻하고 안전한 침실에서 머나먼 별의 요정이 되는 꿈을 꾸거나 앙증맞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폴짝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꿈속에 있던 작은 여자아이는 현실과 접속한다, 바로 민효린처럼.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을 배운 대구 아가씨
대구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대구를 벗어난 적이 없는 민효린은 7살 때 TV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막연하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그 꿈을 이룬 건 절반의 운과 절반의 노력이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다시피 다녔어요. 아버지께서 엄하셔서 아침에는 KTX를 타고 밤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새벽에 들어오기를 거의 1년 동안 했더니 도저히 미안해서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몸이 힘들고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오랫동안 벼려 온 꿈을 포기할 때쯤 기막힌 타이밍으로 현재 소속사 대표에게 발견되었고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 지 2년째. 하지만 그녀에게 서울은 ‘대구보다 조금 더 사람이 많고 차도 많은 커다란 도시’일 뿐이다. “친구가 거의 없어서 만날 사람도 없어요. 처음엔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실에 가야했는데 요즘엔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쉬어요. 적응도 안 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
말하기 전에 잠깐, 쉼표를 찍듯이 쉰다. 신중한 성격일까, 아니면 생각이 많은 걸까. “보기보다는 신중한 편이에요(웃음). 진행하던 일이 확실히 결정되기 전에는 부모님한테도 말도 안 해요. 꾹 참고 기다려요. 그거 힘들어요(웃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부분도 있고, 지는 것도 싫어하고. 욕심도 많아요. 그런데 이건 일이니까요(웃음).” 가늘고 긴, 이를테면 연약한 체구라고 얕보지 마라, 소녀는 강하다.
“광고로 얻은 걸 가수로 다 잃을까 무서웠다”
“원래 자신감도 없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를 보니까, 대구에서 그냥 학교 다니던 아이가 이렇게 서울까지 올라와서 가수가 되려고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하는구나, 아, 정말 너는 생각만 하고 있던 걸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나 초콜릿, 애니콜FX와 같은 광고와 에반의 ‘남자도... 어쩔 수 없다’같은 곡의 뮤직비디오의 소녀로 알려진 그녀가 문득 음반을 내겠다고 했을 때 대중들은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명품 코’라거나 ‘쌩얼미인’이라는 별명으로 먼저 알려진 그녀가 극적으로 연출된 광고 이미지에서 빠져나와 무대에 섰을 때 본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실은, 무서웠어요. 가수로 데뷔하는 게 제 첫 도전인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왜냐면 지금까지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제가 얻은 것들이 가수 활동으로 모두 잃어 버릴까봐 그게 무서웠죠. 정말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데뷔곡으로 나카시마 미카의 곡을 리메이크한 ‘Stars’를 고른 것은 사실 가수에 대해 은근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가수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광고로 먼저 알려졌지만 외모로만 가수를 한다는 선입견도 깨고 싶었어요. 노래에 신경을 썼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서 ‘Stars’를 먼저 발표했어요. 그런데 원래는 리메이크로 정식 데뷔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두 번째 곡도 리메이크인 거죠(웃음).”
그리고 소녀는 더 많은 꿈을 꾼다
상업 광고 모델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다른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했지만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고 싶었던 소녀는 이제 정말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욕심이 많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재능을 찾아내고 싶은 그녀는 당연하게도 가수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연기도 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다. “일본 영화를 무척 좋아해요.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일본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점점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져요.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어요. 또 연기도 해야죠.”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욕심 많은 소녀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소년들과 소녀들이 마침내 모두 통과하고 마는 스무 살 무렵의 어떤 터널을 지나며. “5년 후에는 정말 일본으로 유학을 가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이제 시작한 지 1년 밖에 안 되었으니까 천천히, 차근차근히 밟아가려고요. 너무 어려보인다고 걱정하시는 주위 분들에게는 (활동을) 오래 하려고요, 라고 대답해요(웃음).” 과연 몇 년 뒤, 이 조그맣고 단단한 소녀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낡은 의자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던 소녀는 더 많은 꿈을 꾸고 있다.
<매거진t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