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김형사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서
개그콘서트 김형사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서
요구 조건 다 들어줄 테니 자수하란 소리에 협박범이 드디어 자수를 결심했다. 송강호와 목소리가 닮은, 빠른 사투리를 쓰는 김 형사에게 전화 너머 범인이 말했다.
"내일 말고 지금 자수하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김 형사, 특유의 말투로 다다다 말했다.
"안돼. 야. 그냥 내일 자수해."
아니, 범인이 자수하겠다는데 무슨 형사가 오늘 자수하지 말란 거지? 김 형사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 오늘 회식하기로 했단 말야."
미치겠다. 김 회식 아니 김 형사.
"정 오고 싶으면…."
친절한 김 형사, 그래도 늦게나마 제 정신이 돌아온 건가?
"회식 자리 와서, 인사만 드리고 가고. 인사만 드려."
다들 뒤집어졌다. KBS <개그콘서트>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서 김 형사 김원효는 이렇게 사람들 배꼽을 강탈했다. 첫 회부터 너무 웃어 눈에 눈물나게 하더니, 이제 겨우 3번 방송 나갔을 뿐인데, '너무 웃긴다'는 항의가 쇄도했다.
뱃속 아기도 웃기는 김 형사가 얼른 보고 싶었던 걸까? 한 임산부가 '개콘' 게시판에 털어놓은 사정은 심각했다.
"전 셋째를 임신한 임산부인데요. 너무 웃겨서 배에 힘이 들어가…. 애기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첫회부터 뒤집어졌다, 3회째엔 항의가 쇄도
만국은 아니지만 한국의 임산부와 한국의 시청자를 웃겨 죽일 뻔해, 한국의 배꼽들을 공포에 떨게 한 사나이 김 형사, 아니 김원효를 지난 3일 KBS에서 만났다.
촌티 줄줄줄 흐르는 김 형사가 아니라 모자까지 15도 비스듬히 눌러쓴 댄디한 청년이 나타나는 바람에 '요즘은 '실물'에도 '뽀샵'을 하나?' 생각할 뻔했다. 최근 들어 선배들이 "김 스타, 김 스타" 부르며 놀려 곤혹스럽다는 그의 목소리는 김 형사보다 나직했다.
그런데 꼭지 제목 참 희한하다.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계속 전화만 걸고, 내기 거는 건 하나도 안 나오던데, 이게 무슨 소리지? 혹시 '남 인생에 전화 걸었네'를 잘못 쓴 거 아냐? 살짝 기억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그가 딱 줄여 줬다. "'내내걸'이라고 부르면 돼요." 아무튼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감독님이 지어주신 건데요. 제가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KBS 개그맨 시험에서 떨어지고, 'OTL'이란 코너도 금방 끝나고, 한 마디로 감독님께서 '네가 네 인생을 걸어봐라.' 그런 거예요. 그리고 이게 형사로만 계속 가는 게 아니에요. 일단 형사물로 보여드린 거죠. 똑같은 캐릭터인데 다른 장면이 있거든요."
보면 알 수 있다니 참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개그맨인데 개그맨이 아니다. 2005년 KBS <개그사냥>으로 데뷔한 개그맨 3년차다. 그런데 개그맨 공채 시험에선 떨어졌다.
그는 시험을 2번이나 봤다. 지난해에 봤다. 떨어졌다. 올해 3월에도 봤다. 또 떨어졌다. <폭소클럽2>에서 하는 '친절봉사대'까지, 무려 개그 프로 방송을 3개나 뛸 때였다. 그래도 떨어지다니. 아무래도 '내 인생에 마가 끼었네' 아니냐고 묻자, 그가 웃었다.
"하하. 제목을 바꿔야 해요. '내 인생에 마가 끼었네'로."
범인 전문과 전화 전문이 만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전화를 받을 생각을 했을까? 김 형사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전화 상대는 '범죄의 재구성'의 곽한구다. 그는 아는 이들은 익히 아는, 범인 단골 개그맨이다. 그리고 김원효는 사실 전화 단골 개그맨이다. '친절봉사대'에서도 계속 전화를 받더니, 이번에도 전화다. '내 개그는 전화밖에 몰라'랄까?
"이게 어떻게 됐냐면, 곽한구가 저랑 친구인데 만날 같이 붙어다녀요. 얘가 '범죄의 재구성'에서 범인 하잖아요. '한구야. 넌 범인이 진짜 어울려. 난 전화 받는 것 잘 하고. 넌 범인인데 나한테 전화 아무거나 해봐.' 한구가 얘기를 하더라구요.
'나 어느 어느 장소인데 어느 인질을 잡고 있다. 돈 3억을 달라. 아니면 당신 인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 때 제 대답이 그랬거든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데,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어떻게 될 건데? 말해봐? 함 말해보라고.' (본래 중저음으로 돌아가) 그게 웃긴 거예요. 한구가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야! 요거 재밌다. 이런 식으로 해보자.' 그래서 짜보고 대학로 극장에서 한 번 올려봤어요. 때 마침 <개콘> 메인 작가님이 대학로에 보러 오셨고, 재밌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원래 개그맨들이 감독님한테 리허설 검사를 맡으러 가야 하거든요. 저희는 다음주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새벽에 감독님 전화가 온 거예요. '내일 아침에 보고, 재밌으면 하자.' 그러시는 거예요. 바로 녹화 당일에요. 이런 일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렇게 속전속결로 <개그콘서트> 공개녹화 무대에 섰다. 그게 6월 17일 방송한 첫 번째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였다. 그리고 터졌다. '기쁘다. 대박 오셨네'랄까?
"운이 좋은 거죠."
그가 대뜸 말했다. 사실 운도 좋았는지 몰랐다. 유세윤이 <개콘> 녹화를 앞두고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 해외 촬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세윤이 출연하던 '사랑의 카운슬러'와 '착한 녀석들'은 졸지에 사라졌다. 제작진은 부랴부랴 새 꼭지가 필요했다. 그 때 그가 거기 있었다. 거기 있기까지 쉽지도 않았다.
돈 10원이 전 재산, 방송국까지 2시간을 걸어가다
그는 어려서부터 개그맨이나 연예인을 꿈꾼 건 아니었다. 어려서 꿈은 달랐다. 농담처럼 그가 말했다.
"원래 꿈이 형사였는데, 지금 김 형사를 하고 있네요. 하하하."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모범생이었다. 성격도 약간 내성적이었다. 거기다 그다지 말할 기회도 없었다. 친구들은 성당 가다오다 만나는 게 전부였다. 고3땐, 공부 잘했던 삼촌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공부를 했다.
"우리 집이 보수적이거든요. 그 전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 성당 여자애가 나한테 뭔가를 물어본다고 전화하면요. 제가 거실에서 받잖아요. '여보세요?' '어. 누구누구야.' 그러면 옆에서 엄마가 지금의 김 형사 캐릭터처럼 거실에서 동시에 전화 받으면서 '얘. 원효 지금 공부하고 있으니까, 조금 있다가 전화해.' 그러고 탁 끊어버리는 거예요. 물론 나도 끊어야 되고.
그런데 스무 살, 딱 넘으니까 아무것도 그런 게 없어요. 그래도 제가 서울 간다고 말씀을 못 드렸어요. 아. 얘기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 한 달 동안 술을 먹었어요. 한 달 동안 술 먹고, 안 되겠다. 그냥 말씀 드려야겠다. 그 때 술이 취한 상태로 집에 갔어요.
가서 '어머니, 아버지. 저, 이제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저 이제 하고 싶은 거 할게요. 저, 서울 가겠습니다.' 하니까 '그래.' 그게 끝이에요. 한 달 동안 술 먹은 게 다 날아간 거예요. 내가 왜 한 달 동안 술 먹었을까. 괜히 돈 버리고. 그냥 밥 먹을 때 편하게 '아버지, 어머니. 저 서울 가도 될까요?' 그랬으면 '응. 그래. 갔다 와' 그랬을 텐데.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울 와서 또 안 해 본 거 없이 했다. 피자 배달을 했고, 연기학원도 다녔다. 연기학원이래야 한 달 다니고, 혼자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만두었지만.
대학도 다시 들어갔다. 인덕대 방송연예과였다. 학교 교수님 소개로 오디션을 봤고, 그 오디션에 붙어 2005년 <개그사냥>으로 데뷔했다. 그 때 한 게 '진산소방서'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쉬었다. <폭소클럽2>의 '친절봉사대'로 다시 무대에 설 때까지, 1년 반을 쉬었다. 말이 쉰 거지, 사실 쉰 내 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인터넷 치면 개그맨 김원효라고 나오고, 타이틀은 개그맨인데, 제가 저기 신림동에 있는 호프집 전단지를 돌렸어요. '호프집에 오세요.' 누구한테 전단지를 주면 그 사람이 '혹시 개그맨 아니세요?' 이러면, 괜히 '친척 삼촌이 가게를 하니까 도와주러 왔다'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정말 그거 하기 싫었거든요. 왜 내가 이걸 하고 있나. 개그맨이고 아이디어를 짜야 하는데, 왜 밤에 전단지를 돌리고. 점점 더 개그할 아이디어를 짜는 시간보다 전단지를 돌리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구요. 아. 이게 아니다. 내가 돈을 못 벌더라도 아이디어 짜는 시간을 많이 해야겠다. 그래서 몇 달 하다 그만뒀어요."
그러자 생활은 당장 쪼들렸다. 고시원에 살 때였다. 고시원도 서울 외곽인 강북 수유동이었다. 하루는 방송국에서 선배 한 명이 전화를 했다. "야. 방송국에서 뭐 할 게 있는데 와라. 너 언제쯤 올래?" 기가 막혔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게, 수중에 딱 10원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가 말했다. "약 2시간쯤 있다 가겠습니다." 그러자 선배가 말했다. "뭐하느라 2시간이나 걸려? 빨리 와.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1시간이면 족하잖아?" 그가 말했다. "네? 그러면 족한데, 걸어서 가면 늦잖아요." 그리고 걸었다. 여의도까지 걸어갔다. 딱 2시간 걸렸다. 집에 갈 땐 그 선배가 차비를 건네줬다.
"난 얼굴이 개인기"
"솔직히 말씀 드려서 개인기가 없어서요. 남들 다 하는 거 하면, 개인기라고 말하기 그렇거든요. 전 얼굴이 개인기 같아요. 얼굴이 김수용씨, 지금 뮤지컬 배우로, 어렸을 때 나오던 김수용씨요. 그 분 닮았단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아직도 우리집 옆 슈퍼 아줌마는 제가 그 사람인 줄 알아요."
그럼 어렸을 때는? 친구들 간에 좀 웃긴다거나 하는 건?
"제 친구들이 '야. 너 안 웃겼는데, 왜 이렇게 웃겨?' 이러는 애들이 많아요. 저보다 웃긴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걔네들은 비방용으로 웃기고 전 방송용으로 웃기고. 하하하."
믿기지 않았지만, 그랬다. 얼굴만 봐도 웃기고, 입술 씰룩이며 하이톤으로 말하면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럼 뭐란 거지?
"유세윤 선배 같은 경우는 솔직히 사석에서 별로 웃긴 분이 아니에요. 정말 내성적이고 조용하신데, 무대 위에선 정말 최고거든요. 연기를 잘 하시니까, 에너지도 넘치시고. 사람이 180도 달라지더라구요. 아. 그게 정말 프로다운 모습이구나. 나도 그렇게 했음 좋겠다. 저도 밖에선 조용한데, 무대 위에 올라가면 밖이랑 다르게 그런 게 있어요. 그냥 연기에 몰입을 하는 거죠."
그가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날마다 하루 20개씩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 문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주는 '개그 아이디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거나, 알아보더라도 쓸 수 없는 아이디어라서 그렇지.
그는 그 아버지 빼곤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아버지, 뭐라고 해야 할까? 집안에 흐르는 피가 범상치 않다고 해야 할까?
"한 번은 제가 공채시험을 잘 못 봤어요. 낙심하고 있는데, 아버지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올라가며) '야. 뭐해?' (목소리 바뀌어 풀 없이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험 봤어요. 보고 나와서 앉아있어요.' '뭐 봤는데?' '공채 시험 봤어요.' '어. 축구 못 봤나?' 한국 대 누구 중계하는 거였어요. '야. 축구 못 봤나?' '아버지 무슨 얘기하세요. 지금 공채 시험 보고 왔다니까요.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야. 씨, 축구 이겼는데.' 딴 얘기 하시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나이가 드셔서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제가 뭔 얘길 하면 딴 이야길 하시더라구요.
'아버지 식사하셨어요?' 그러면, '어어. 엄마는 잘 있다.' '네? 아니 뭐 서울에서 큰 집에 제사 지내러 오신다고 했는데, 언제쯤 올라오세요?' '어. 이제 밥 먹으려고.' 뭔 얘기 하시는지 몰라요."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엉뚱한 김 형사가 태어난 걸까? 하지만 그의 목표는 소박했다. '소중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했다. 그럼 인생의 좌우명이랄까 그런 건?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 한다. 이건 제 생각인데, 최고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요. 이기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남의 아이디어도 뺏어야 되고, 예전에 했던 걸 약간 변형해서 해야 되고, 하여튼 누구를 밟아야 최고가 된다구요. 그렇게 목표를 안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열심히 하면, 언젠간 사람들이 나를 다시 불러주고 알아주겠지.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그럼 그런 마음을 알아줘, 만약에 누가 그에게 어떤 능력을 맘대로 준다고 한다면? 가장 갖고 싶은 능력이 (박해미 말투로) 뭘까~요? 그가 말했다.
"로또 1등 맞추는 능력?(웃음)"
그는 훗날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하지만 훗날이 문제인가? 고시원은 벗어났다지만 아직 제 코가 석자인데? 반지하에 살아서 돈을 더 벌면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그에게, 그러려면 CF가 들어와야겠다고 웃으며 말하자, 그가 대뜸 말했다.
"전화 받는 CF가 많잖아요. 콘티까지 다 짜놨어요. 누가 하시던 분이 계신데, 그 분이 군대를 가시면, 제가 그 CF를 해야 되는데(웃음). 그 제품 사용하지 마세요. 이 제품 사용하세요. 그 제품 사용한다고요? 안돼에에에. 제 마지막 말투 있잖아요. 안돼에에에. 이게 더 좋단 말야. 어때? 써보니까 어때? 입질이 슬슬 오나? 어때? 써보니까 어때? 끌리지? 어?"
김 형사 때문에, 웃다가 내 인생에 사레 걸렸다.
<출처-오마이뉴스>
개그콘서트 김형사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서
요구 조건 다 들어줄 테니 자수하란 소리에 협박범이 드디어 자수를 결심했다. 송강호와 목소리가 닮은, 빠른 사투리를 쓰는 김 형사에게 전화 너머 범인이 말했다.
"내일 말고 지금 자수하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김 형사, 특유의 말투로 다다다 말했다.
"안돼. 야. 그냥 내일 자수해."
아니, 범인이 자수하겠다는데 무슨 형사가 오늘 자수하지 말란 거지? 김 형사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 오늘 회식하기로 했단 말야."
미치겠다. 김 회식 아니 김 형사.
"정 오고 싶으면…."
친절한 김 형사, 그래도 늦게나마 제 정신이 돌아온 건가?
"회식 자리 와서, 인사만 드리고 가고. 인사만 드려."
다들 뒤집어졌다. KBS <개그콘서트>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서 김 형사 김원효는 이렇게 사람들 배꼽을 강탈했다. 첫 회부터 너무 웃어 눈에 눈물나게 하더니, 이제 겨우 3번 방송 나갔을 뿐인데, '너무 웃긴다'는 항의가 쇄도했다.
뱃속 아기도 웃기는 김 형사가 얼른 보고 싶었던 걸까? 한 임산부가 '개콘' 게시판에 털어놓은 사정은 심각했다.
"전 셋째를 임신한 임산부인데요. 너무 웃겨서 배에 힘이 들어가…. 애기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첫회부터 뒤집어졌다, 3회째엔 항의가 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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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티 줄줄줄 흐르는 김 형사가 아니라 모자까지 15도 비스듬히 눌러쓴 댄디한 청년이 나타나는 바람에 '요즘은 '실물'에도 '뽀샵'을 하나?' 생각할 뻔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코너에 김형사 역할로 출연중인 김원효씨. |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
촌티 줄줄줄 흐르는 김 형사가 아니라 모자까지 15도 비스듬히 눌러쓴 댄디한 청년이 나타나는 바람에 '요즘은 '실물'에도 '뽀샵'을 하나?' 생각할 뻔했다. 최근 들어 선배들이 "김 스타, 김 스타" 부르며 놀려 곤혹스럽다는 그의 목소리는 김 형사보다 나직했다.
그런데 꼭지 제목 참 희한하다.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계속 전화만 걸고, 내기 거는 건 하나도 안 나오던데, 이게 무슨 소리지? 혹시 '남 인생에 전화 걸었네'를 잘못 쓴 거 아냐? 살짝 기억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그가 딱 줄여 줬다. "'내내걸'이라고 부르면 돼요." 아무튼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감독님이 지어주신 건데요. 제가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KBS 개그맨 시험에서 떨어지고, 'OTL'이란 코너도 금방 끝나고, 한 마디로 감독님께서 '네가 네 인생을 걸어봐라.' 그런 거예요. 그리고 이게 형사로만 계속 가는 게 아니에요. 일단 형사물로 보여드린 거죠. 똑같은 캐릭터인데 다른 장면이 있거든요."
보면 알 수 있다니 참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개그맨인데 개그맨이 아니다. 2005년 KBS <개그사냥>으로 데뷔한 개그맨 3년차다. 그런데 개그맨 공채 시험에선 떨어졌다.
그는 시험을 2번이나 봤다. 지난해에 봤다. 떨어졌다. 올해 3월에도 봤다. 또 떨어졌다. <폭소클럽2>에서 하는 '친절봉사대'까지, 무려 개그 프로 방송을 3개나 뛸 때였다. 그래도 떨어지다니. 아무래도 '내 인생에 마가 끼었네' 아니냐고 묻자, 그가 웃었다.
"하하. 제목을 바꿔야 해요. '내 인생에 마가 끼었네'로."
범인 전문과 전화 전문이 만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전화를 받을 생각을 했을까? 김 형사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전화 상대는 '범죄의 재구성'의 곽한구다. 그는 아는 이들은 익히 아는, 범인 단골 개그맨이다. 그리고 김원효는 사실 전화 단골 개그맨이다. '친절봉사대'에서도 계속 전화를 받더니, 이번에도 전화다. '내 개그는 전화밖에 몰라'랄까?
"이게 어떻게 됐냐면, 곽한구가 저랑 친구인데 만날 같이 붙어다녀요. 얘가 '범죄의 재구성'에서 범인 하잖아요. '한구야. 넌 범인이 진짜 어울려. 난 전화 받는 것 잘 하고. 넌 범인인데 나한테 전화 아무거나 해봐.' 한구가 얘기를 하더라구요.
'나 어느 어느 장소인데 어느 인질을 잡고 있다. 돈 3억을 달라. 아니면 당신 인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 때 제 대답이 그랬거든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데,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어떻게 될 건데? 말해봐? 함 말해보라고.' (본래 중저음으로 돌아가) 그게 웃긴 거예요. 한구가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야! 요거 재밌다. 이런 식으로 해보자.' 그래서 짜보고 대학로 극장에서 한 번 올려봤어요. 때 마침 <개콘> 메인 작가님이 대학로에 보러 오셨고, 재밌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원래 개그맨들이 감독님한테 리허설 검사를 맡으러 가야 하거든요. 저희는 다음주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새벽에 감독님 전화가 온 거예요. '내일 아침에 보고, 재밌으면 하자.' 그러시는 거예요. 바로 녹화 당일에요. 이런 일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렇게 속전속결로 <개그콘서트> 공개녹화 무대에 섰다. 그게 6월 17일 방송한 첫 번째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였다. 그리고 터졌다. '기쁘다. 대박 오셨네'랄까?
"운이 좋은 거죠."
그가 대뜸 말했다. 사실 운도 좋았는지 몰랐다. 유세윤이 <개콘> 녹화를 앞두고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 해외 촬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세윤이 출연하던 '사랑의 카운슬러'와 '착한 녀석들'은 졸지에 사라졌다. 제작진은 부랴부랴 새 꼭지가 필요했다. 그 때 그가 거기 있었다. 거기 있기까지 쉽지도 않았다.
돈 10원이 전 재산, 방송국까지 2시간을 걸어가다
그는 어려서부터 개그맨이나 연예인을 꿈꾼 건 아니었다. 어려서 꿈은 달랐다. 농담처럼 그가 말했다.
"원래 꿈이 형사였는데, 지금 김 형사를 하고 있네요. 하하하."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모범생이었다. 성격도 약간 내성적이었다. 거기다 그다지 말할 기회도 없었다. 친구들은 성당 가다오다 만나는 게 전부였다. 고3땐, 공부 잘했던 삼촌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공부를 했다.
"우리 집이 보수적이거든요. 그 전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 성당 여자애가 나한테 뭔가를 물어본다고 전화하면요. 제가 거실에서 받잖아요. '여보세요?' '어. 누구누구야.' 그러면 옆에서 엄마가 지금의 김 형사 캐릭터처럼 거실에서 동시에 전화 받으면서 '얘. 원효 지금 공부하고 있으니까, 조금 있다가 전화해.' 그러고 탁 끊어버리는 거예요. 물론 나도 끊어야 되고.
그런데 스무 살, 딱 넘으니까 아무것도 그런 게 없어요. 그래도 제가 서울 간다고 말씀을 못 드렸어요. 아. 얘기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 한 달 동안 술을 먹었어요. 한 달 동안 술 먹고, 안 되겠다. 그냥 말씀 드려야겠다. 그 때 술이 취한 상태로 집에 갔어요.
가서 '어머니, 아버지. 저, 이제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저 이제 하고 싶은 거 할게요. 저, 서울 가겠습니다.' 하니까 '그래.' 그게 끝이에요. 한 달 동안 술 먹은 게 다 날아간 거예요. 내가 왜 한 달 동안 술 먹었을까. 괜히 돈 버리고. 그냥 밥 먹을 때 편하게 '아버지, 어머니. 저 서울 가도 될까요?' 그랬으면 '응. 그래. 갔다 와' 그랬을 텐데.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울 와서 또 안 해 본 거 없이 했다. 피자 배달을 했고, 연기학원도 다녔다. 연기학원이래야 한 달 다니고, 혼자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만두었지만.
대학도 다시 들어갔다. 인덕대 방송연예과였다. 학교 교수님 소개로 오디션을 봤고, 그 오디션에 붙어 2005년 <개그사냥>으로 데뷔했다. 그 때 한 게 '진산소방서'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쉬었다. <폭소클럽2>의 '친절봉사대'로 다시 무대에 설 때까지, 1년 반을 쉬었다. 말이 쉰 거지, 사실 쉰 내 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인터넷 치면 개그맨 김원효라고 나오고, 타이틀은 개그맨인데, 제가 저기 신림동에 있는 호프집 전단지를 돌렸어요. '호프집에 오세요.' 누구한테 전단지를 주면 그 사람이 '혹시 개그맨 아니세요?' 이러면, 괜히 '친척 삼촌이 가게를 하니까 도와주러 왔다'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정말 그거 하기 싫었거든요. 왜 내가 이걸 하고 있나. 개그맨이고 아이디어를 짜야 하는데, 왜 밤에 전단지를 돌리고. 점점 더 개그할 아이디어를 짜는 시간보다 전단지를 돌리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구요. 아. 이게 아니다. 내가 돈을 못 벌더라도 아이디어 짜는 시간을 많이 해야겠다. 그래서 몇 달 하다 그만뒀어요."
그러자 생활은 당장 쪼들렸다. 고시원에 살 때였다. 고시원도 서울 외곽인 강북 수유동이었다. 하루는 방송국에서 선배 한 명이 전화를 했다. "야. 방송국에서 뭐 할 게 있는데 와라. 너 언제쯤 올래?" 기가 막혔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게, 수중에 딱 10원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가 말했다. "약 2시간쯤 있다 가겠습니다." 그러자 선배가 말했다. "뭐하느라 2시간이나 걸려? 빨리 와.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1시간이면 족하잖아?" 그가 말했다. "네? 그러면 족한데, 걸어서 가면 늦잖아요." 그리고 걸었다. 여의도까지 걸어갔다. 딱 2시간 걸렸다. 집에 갈 땐 그 선배가 차비를 건네줬다.
"난 얼굴이 개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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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꿈이 형사였는데, 지금 김 형사를 하고 있네요. 하하하." | |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
그럼 어렸을 때는? 친구들 간에 좀 웃긴다거나 하는 건?
"제 친구들이 '야. 너 안 웃겼는데, 왜 이렇게 웃겨?' 이러는 애들이 많아요. 저보다 웃긴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걔네들은 비방용으로 웃기고 전 방송용으로 웃기고. 하하하."
믿기지 않았지만, 그랬다. 얼굴만 봐도 웃기고, 입술 씰룩이며 하이톤으로 말하면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럼 뭐란 거지?
"유세윤 선배 같은 경우는 솔직히 사석에서 별로 웃긴 분이 아니에요. 정말 내성적이고 조용하신데, 무대 위에선 정말 최고거든요. 연기를 잘 하시니까, 에너지도 넘치시고. 사람이 180도 달라지더라구요. 아. 그게 정말 프로다운 모습이구나. 나도 그렇게 했음 좋겠다. 저도 밖에선 조용한데, 무대 위에 올라가면 밖이랑 다르게 그런 게 있어요. 그냥 연기에 몰입을 하는 거죠."
그가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날마다 하루 20개씩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 문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주는 '개그 아이디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거나, 알아보더라도 쓸 수 없는 아이디어라서 그렇지.
그는 그 아버지 빼곤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아버지, 뭐라고 해야 할까? 집안에 흐르는 피가 범상치 않다고 해야 할까?
"한 번은 제가 공채시험을 잘 못 봤어요. 낙심하고 있는데, 아버지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올라가며) '야. 뭐해?' (목소리 바뀌어 풀 없이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험 봤어요. 보고 나와서 앉아있어요.' '뭐 봤는데?' '공채 시험 봤어요.' '어. 축구 못 봤나?' 한국 대 누구 중계하는 거였어요. '야. 축구 못 봤나?' '아버지 무슨 얘기하세요. 지금 공채 시험 보고 왔다니까요.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야. 씨, 축구 이겼는데.' 딴 얘기 하시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나이가 드셔서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제가 뭔 얘길 하면 딴 이야길 하시더라구요.
'아버지 식사하셨어요?' 그러면, '어어. 엄마는 잘 있다.' '네? 아니 뭐 서울에서 큰 집에 제사 지내러 오신다고 했는데, 언제쯤 올라오세요?' '어. 이제 밥 먹으려고.' 뭔 얘기 하시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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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열심히 하면, 언젠간 사람들이 나를 다시 불러주고 알아주겠지.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
그렇게 엉뚱한 김 형사가 태어난 걸까? 하지만 그의 목표는 소박했다. '소중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했다. 그럼 인생의 좌우명이랄까 그런 건?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 한다. 이건 제 생각인데, 최고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요. 이기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남의 아이디어도 뺏어야 되고, 예전에 했던 걸 약간 변형해서 해야 되고, 하여튼 누구를 밟아야 최고가 된다구요. 그렇게 목표를 안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열심히 하면, 언젠간 사람들이 나를 다시 불러주고 알아주겠지.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그럼 그런 마음을 알아줘, 만약에 누가 그에게 어떤 능력을 맘대로 준다고 한다면? 가장 갖고 싶은 능력이 (박해미 말투로) 뭘까~요? 그가 말했다.
"로또 1등 맞추는 능력?(웃음)"
그는 훗날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하지만 훗날이 문제인가? 고시원은 벗어났다지만 아직 제 코가 석자인데? 반지하에 살아서 돈을 더 벌면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그에게, 그러려면 CF가 들어와야겠다고 웃으며 말하자, 그가 대뜸 말했다.
"전화 받는 CF가 많잖아요. 콘티까지 다 짜놨어요. 누가 하시던 분이 계신데, 그 분이 군대를 가시면, 제가 그 CF를 해야 되는데(웃음). 그 제품 사용하지 마세요. 이 제품 사용하세요. 그 제품 사용한다고요? 안돼에에에. 제 마지막 말투 있잖아요. 안돼에에에. 이게 더 좋단 말야. 어때? 써보니까 어때? 입질이 슬슬 오나? 어때? 써보니까 어때? 끌리지? 어?"
김 형사 때문에, 웃다가 내 인생에 사레 걸렸다.
<출처-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