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동사니/사회적이슈

이진숙기자

이진숙기자
이진숙기자

국민학교’란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게 한 주역은 누구일까? 1993년 2차 걸프전 현장에 뛰어든 한국 최초의 언론인은 누구일까? 50년간 캄보디아에서 외롭게 살아온 일본군위안부 ‘훈 할머니’ 이야기로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주인공은 누구일까?

올해로 24회를 맞는 ‘최은희 여기자상’ 수상자 목록에 그 답이 있다. 최은희 여기자상은 일제시대 여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공창과 인신매매 폐지, 여성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를 주장했던 조선일보 기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추계(秋溪) 최은희(崔恩喜) 선생이 평생 원고료를 모아 마련한 쌈짓돈으로 1984년 제정한 상. 지난 23년간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한 여성 언론인은 신문·방송을 포함해 모두 26명으로, 1980년대 이후 한국 언론사를 장식한 여기자들의 성취가 그대로 녹아 있다.

최은희 여기자상 운영위원회가 보관해온 수상자들의 빛바랜 추천서엔 당시 여기자들의 활약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문화재 관리국의 담을 넘어 들어가 특종기사를 거머쥐었’는가 하면(1회 신동식 서울신문 수도권부 기자. 이하 수상 당시 직함), ‘멋진 여성 파트너 빌려드립니다’라는 레저기업 광고에 따끔한 철퇴’를 내린(3회 박금옥 중앙일보 문화부 차장) 기사도 눈에 띈다. 6회 수상자인 김운라 당시 KBS 문화과학부 차장은 ‘유명 백화점들의 교묘한 속임수 세일과 교단의 봉투 비리를 파헤쳐’ 상을 받았고, 16회 수상자인 류현순 KBS 보도국 부주간은 ‘쓰레기 줄여야 한다’는 시리즈로 재활용품 분리수거 정책을 이끌어냈다. ‘이름에 남은 일제오염’이란 제목의 칼럼으로 황국신민 양성기관이란 뜻의 국민학교란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게 한 주인공은 13회 수상자인 최성자 한국일보 생활부장.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금녀(禁女)의 벽’을 깨뜨린 여성 언론인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는다. 11회 수상자인 MBC 이진숙 기자가 대표적. 소말리아에 특파돼 평화유지군 활동을 시작한 상록수부대의 활동을 위성전화로 보도한 데 이어 93년 1월 발발한 걸프전에 국내 언론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라크 현지에 입국해 전황을 보도했다. 21회 수상자인 강인선 조선일보 기자는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 현장을 40일간 종군하며 쓴 새로운 스타일의 기사로 여기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뜨렸다.

취재 영역의 전문화 추세는 여성 언론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한반도의 보고 한탄강’이라는 탐사 시리즈로 22회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한 경기일보 이연섭 문화부장은 지역 언론의 가능성과 더불어 18년간 문화 분야에 전념해온 여기자의 전문 역량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여기자들의 괄목할 만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여성 언론인들의 위상은 10~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단 수적으로 열세다. ‘2006 한국신문방송연감’에 의하면 여기자 숫자는 1535명으로, 전체 기자 9000명의 17%다. 여기자들의 근무 형태도 편중돼 있다. ‘2006 한국신문방송연감’에서 종합일간지 여기자들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부서는 편집부 26.7%, 문화부 12.2%, 사회부 10.2%, 경제부 6.4%, 정치부 4.7%, 국제부 3.6% 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최선열 교수는 “여성 1호 편집국장·주필·사장이 배출됐다고 해서 유리천장이 깨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험하려는 도전정신, 이를 뒷받침할 정교한 리더십, 여기자들을 전략적으로 키우는 언론사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최은희 여기자상은 바로 그 ‘유리 천장’을 부수는 여기자들의 성취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상이다.